[찾아가는양조장 칼럼] 평택의 쌀과 어머니의 손길이 만날 때, '천비향'이 그리는 법고창신(法古創新)

 

평택은 기름진 땅이다. 예부터 '평택 쌀'이라 하면 전국에서 으뜸으로 쳤다. 그 너른 들판 한가운데, 이름부터 당당한 '좋은술' 양조장이 있다. 이곳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화려한 기계 장치가 아닌, 서늘한 공기를 가득 채운 기다림의 냄새다.

다섯 번의 빚음, '오양주'라는 고행의 길

이곳의 이예령 대표는 타협하지 않는 양조인으로 유명하다. (주)좋은술의 상징인 **'천비향(千扉響)'**은 오양주(五釀酒)다. 술을 한 번 빚고 마는 것이 아니라, 밑술에 덧술을 네 번 더한다.

일반적인 막걸리가 사흘이면 나오고, 웬만한 프리미엄 술도 삼양주(세 번 빚음)에 그치는 것에 비하면 이는 수익성을 따지는 기업가로서는 내리기 힘든 결정이다. 하지만 이 대표는 단호하다. "술은 쌀이 자신을 온전히 녹여낼 시간을 주어야 비로소 깊은 울림을 준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다섯 번의 발효를 거친 술은 인위적인 감미료 없이도 쌀이 가진 본연의 단맛과 산미를 경이로운 밸런스로 끌어올린다.

'천 년의 비화가 울려 퍼지다' : 브랜딩에 담긴 철학

'천비향'이라는 이름에는 '천 년 전의 비화가 들린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이는 단순히 옛것을 재현한다는 의미를 넘어, 사라져가는 우리 전통의 원형을 복원해 현대인의 감각에 맞게 재해석하겠다는 의지다.

작가의 시각에서 본 (주)좋은술의 비즈니스 모델은 **'느림의 미학을 상품화한 고도의 전략'**이다. 6개월 이상의 장기 저온 숙성을 거치며 술 속의 알코올 입자는 작아지고 풍미는 촘촘해진다. 마신 뒤 머리가 아프지 않고 입안에 끈적임이 남지 않는 깔끔함은, 현대 소비자들이 프리미엄 전통주에 요구하는 '세련된 음주 경험'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지역과 상생하는 '찾아가는 양조장'의 본보기

(주)좋은술은 단순히 술만 파는 곳이 아니다. '찾아가는 양조장'으로서 이곳은 평택의 농산물을 소비하고, 방문객들에게 전통주의 가치를 전파하는 교육의 장이기도 한다. 직접 누룩을 딛고 술을 빚어보는 체험 프로그램은 젊은 세대에게 '전통주는 지루하다'는 편견을 깨뜨리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양조장 한쪽에서 익어가는 술항아리들은 마치 수행하는 수도승처럼 정묵(靜默)을 지키고 있다. 이예령 대표가 빚는 것은 술이 아니라, 어쩌면 사라져가는 우리들의 정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통주, 산업을 넘어 문화의 정점으로

술은 그 나라의 문화적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다. (주)좋은술이 보여주는 행보는 우리 술이 와인이나 사케와 견주어도 손색없는 '문화 상품'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평택 쌀의 묵직한 힘과 다섯 번의 덧술이 만든 화사한 향기, 그리고 숙련된 장인의 손길. 이 삼박자가 어우러진 천비향 한 잔에는 한국 전통주가 나아가야 할 **'프리미엄의 기준'**이 담겨 있었다.

[시음 노트] 천비향 약주, 쌀의 정수가 도달한 지고(至高)의 밸런스

전통주 시장에서 '약주'는 가장 다루기 까다로운 장르다. 탁주처럼 질감으로 승부할 수도, 소주처럼 도수의 강렬함 뒤로 숨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오로지 맑은 술의 투명함 속에 쌀과 누룩, 그리고 시간의 세 박자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져야만 비로소 '명주'의 반열에 오른다. (주)좋은술의 **'천비향 약주'**는 그 정점에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술이다.

구조의 미학: 오양주가 만든 겹겹의 층위

천비향 약주의 첫인상은 **'단단한 구조감'**이다. 다섯 번의 덧술을 거친 이 술은 입안에 닿는 순간, 가벼운 단맛으로 시작해 묵직한 바디감을 지나 산뜻한 산미로 마무리되는 서사가 뚜렷하다.

일반적인 약주들이 단일한 맛의 흐름을 보인다면, 천비향은 마치 잘 짜인 교향곡처럼 겹겹의 레이어(Layer)를 가지고 있다. 쌀에서 기인한 천연의 당미(糖味)는 결코 과하지 않으며, 6개월 이상의 장기 숙성이 선사하는 부드러운 유질감은 목을 타고 넘어갈 때 비단 같은 감촉을 남긴다.

향의 스펙트럼: 인위(人爲)를 배제한 자연의 향기

코끝에서 느껴지는 향은 화사하면서도 절제되어 있다. 잘 익은 참외나 배 같은 과실 향이 은은하게 감도는데, 이는 가향(加香)을 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발효의 기술로만 끌어올린 **'발효의 꽃'**이다.

나의 시각에서 이 술의 가장 큰 미덕은 '정직함'에 있다. 누룩의 퀴퀴한 향(누룩취)을 완벽하게 잡아내면서도, 원재료인 평택 쌀의 고소한 풍미를 끝까지 지켜냈다. 이는 양조장의 위생 관리와 온도 조절 능력이 비즈니스적 신뢰로 이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페어링의 가치: 식탁의 품격을 결정하는 '마지막 한 조각'

천비향 약주는 자기주장이 강하면서도 음식과 섞였을 때 상대의 기를 죽이지 않는다. 간장 베이스의 한식 갈비찜이나 해산물 요리는 물론, 풍미가 강한 하드 치즈와도 훌륭한 마리아주를 보여준다.

이 술은 단순히 취하기 위해 마시는 '알코올'이 아니다. 귀한 손님을 모신 자리에서 그날의 대화 수준을 결정짓는 **'문화적 매개체'**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16도라는 결코 낮지 않은 도수에도 불구하고 알코올의 역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은, 고도주를 기피하는 현대적 트렌드와 프리미엄을 지향하는 소비자의 욕구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강력한 무기다.

총평

"천비향 약주는 한국 약주가 도달할 수 있는 미학적 완성도를 증명한다. 쌀의 단맛이 어떻게 품격을 갖출 수 있는지, 시간이 어떻게 맛의 밀도를 만드는지 알고 싶다면 이 술이 가장 명확한 답이 될 것이다."

 

작성 2026.01.03 17:54 수정 2026.01.03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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